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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 @dnlfrmfpdldja

Adapt, Evolve, Become​

창문을 열자 덥고 습한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윌은 요즘 이 시간대를 가장 좋아했다. 얼마 전 새로 입양한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열린 창문 옆에 앉아 조금은 텁텁하고 더운 바람을 쐬는 밤 9시. 은은한 캔들 불빛에 의지한 채로 어두운 방에 앉아 아직 붐비는 거리와 밝은 불빛이 켜져 있는 건물들을 구경하다 아직 조금 쓰라린 입 안의 상처에 윌은 얼굴을 찌푸렸다. 윌은 조금 머뭇거리다 강아지를 쓰다듬던 손을 거두고,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거울을 손에 쥐었다. 오른쪽 뺨의 그 상처의 존재는 자신이 한니발을 선택했다는 죄악감을 계속해서 상기시켰다. 그 때문에 프랜시스 돌러하이드를 한니발과 같이 ‘사냥’한 그날 밤 이후로 윌은 자신의 얼굴을 잘 확인하지 않는 습관을 들였다.

 

그날 밤 이후 오랜 회복 기간이 있었고 한니발은 자신이 그렇게 바랬던 윌이 자신을 택했다는 성취감과 행복감에 그 답지 않게 조금은 들떠 보인 듯했다. 하지만 윌은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에 위치한 죄책감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 속을 끔찍하게 메어오는 죄악감에 윌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자신의 속에 잠식되어 있던 죄책감과 우울함이 그를 안에서부터 천천히 갉아먹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왔던 그의 진실한 욕망과 마주했지만, 윌은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자신이 겁쟁이처럼 느껴졌다. 자기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존재가 자신과 정반대의 ‘악’ 그 자체인 사람이라니. 윌은 지독한 그 운명에 헛웃음 지었다.

 

윌은 숨을 살짝 내쉰 뒤, 자신의 눈높이에 맞게 거울을 올려 그 속의 상처 투성이인 자신을 응시했다. 이마에 길게 이어진 흉터, 왼쪽 광대 쪽에 남은 작은 상처, 그리고 오른쪽 뺨에 선명한 칼자국.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것인지 혀끝에 피 맛이 맴돌기 시작하자 윌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피가 멈추지 않고 폭포처럼 쏟아져 나와 자신의 피에 질식할 뻔했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그 날의 기억 일부가 생각나자 윌은 인상을 찌푸렸다. 불쾌함을 조금이라도 날려보기 위해 윌은 거울을 다시 내려놓고 제 무릎 위에서 잠을 청하는 강아지를 쓰다듬어주며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멀리서 보이는 화려한 야경과 대비되는 새까만 밤하늘을 보자 숨이 막혀오는 듯했다. 밤. 어두움. 윌은 한 번도 그날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차가운 바닷물과 끝까지 그를 감싸고 있던 단단한 팔.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 느낌은 매일 같이 악몽을 불러올 정도로 뼈저리게 생생했다. 마음 한편 한니발이 자신을 살려줄 거라 믿고 절벽 밑으로 몸을 던졌지만, 윌은 바닷물을 토해내며 결국 죽음도 자신의 손으로 선택할 수 없다는 허망함을 느꼈다.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그날의 어둠이 떠올라 윌은 약하게 헛구역질을 했다. 울렁거리는 속을 억지로 누르며 평온하게 잠든 제 강아지를 보고 있을까, 똑똑, 노크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윌은 작게 한숨을 쉰 뒤 목소리를 가다듬은 채로 입을 뗐다.

 

“Come in.”

 

윌의 대답에 버건디 색 니트에 검은 슬랙스를 차려 입은 한니발이 한 손에는 와인잔을 든 채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BSHCI에 수감되어 있던 동안 짧게 정돈되어 있었던 한니발의 은빛 머리는 이제 제법 길게 자라 있었다. 그들이 볼티모어에서 도망친 이후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는 나눈 적은 손에 꼽았다. 서로 회복하는 기간이 길기도 했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FBI와 잭에게서 안전한 곳을 찾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찾은 안정감에 윌이 원하던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할 수 있었고, 한니발이 마련해준 가짜 신분으로 일자리도 찾을 수 있었다. 수없이 바쁘게 지내왔던 날들이 지나고, 윌은 쿠바 해안가에서 보트 모터 고치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 밤마다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몰리, 월터, 알라나, 잭, 에비게일, 한니발. 생각하면 할수록 윌은 한니발을 볼 때 마다 느끼던 애증의 감정은 더 격해졌기에 일부러 그와의 대화를 피하곤 했었다.

 

“잠에 들기 전에 굿나잇 인사를 하러 왔어요.”

 

한니발의 목소리에 주저 없이 흔들리던 윌의 눈동자는 한니발에게로 옮겨졌다. 한니발은 윌에게 와인 글래스를 건네곤 윌의 반대편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았다. 윌은 자신이 마치 몇 년 전처럼 한니발의 상담실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윌은 한니발의 말에 대답 대신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은 뒤 자신의 무릎에 기대 잠든 강아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는게 윌은 지금 한니발의 얼굴을 보고싶지 않았다. 그를 선택했다는 끔찍한 죄악감과 죄책감이 자신에게 끈덕지게 붙어오는 기분에 마른침을 한번 삼킨 뒤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한니발은 자신을 피하는 윌의 시선을 눈치채고선 그도 윌에게 붙어 잠든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역시 윌을 좋아하는군요.”

 

한니발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로 윌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니까요.”

“자신보다 약한 생명체들에게 애착을 쉽게 형성하는 윌의 버릇도 영향이 있었겠죠.”

 

한니발의 대답에 윌은 날카롭게 시선을 그에게로 옮겼다.

 

“인사를 하러 온 건가요. 이야기를 하려 온 건가요?”

“윌은 어느 쪽 같이 느껴지나요?”

 

오히려 되질문을 해오는 한니발에 윌은 한숨을 쉬고 와인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정말 다시 그의 비공식적 환자가 되어 그와 상담을 하는 기분이었다. ‘인사를 핑계로 대화를 시도하려 온 거겠죠.’ 윌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에서 돌아오자마자 마신 위스키 때문인지 윌은 어지러운 정신을 가다듬으며 한니발을 똑바로 응시했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으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려 입을 떼기도 전에 한니발이 먼저 물었다.

 

“후회하나요?”

 

윌은 조금 모호하게 들리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을 후회한다 말인가. 자신이 한니발을 선택한 것?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그와 도망친 것? 3년 만에 나타나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던 잭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 애초에 한니발과 이렇게 지독하게 얽혀버린 것?

 

윌의 무릎에 기대 잠들어 있었던 강아지는 한니발과 윌의 대화 소리에 깨 윌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방석으로 자리를 옮겨간 지 오래였다. 쿵 쿵 쿵, 다리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던 강아지의 심장 박동과 따뜻함이 사라지자 윌은 조금 어색하다는 듯 제 손으로 강아지가 기대 누워있던 곳을 제 손으로 쓸었다.

 

강의실 안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빌리려 들어온 잭 크로포드, 엘리스 니콜스, 깃털을 가진 사슴의 형상, 경동맥이 잘린 채로 피를 폭포처럼 쏟아내며 제 손안에서 죽은 홉스 부인, 아드레날린, 총성 10번, 개럿 제이콥 홉스의 죽음, 온몸을 덜덜 떨리게 하던 희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에비게일. 윌은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을 오랜만에 머릿속에서 꺼냈다. 후회라니. 내가 후회를 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미네소타 슈라이크 케이스에 발을 들인 제 결정을 후회 해야 하는 건가, 윌은 실소를 터뜨렸다. 윌의 반응을 자세하게 관찰하던 한니발은 천천히 입을 뗐다.

“우리의 관계는 대화와 교감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어요. 정신과 의사와 그의 비공식적 환자. 공교롭게도 지금과 같이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앉은 채로 볼티모어의 제 상담실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죠. 대화를 통해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에 대해 많은 걸 배우고 깨닫게 돼요. 윌이 저와의 대화를 통해 부정하던 어두움을 받아들였듯이요. 대게 정신적 교감과 이성적인 대화는 인간과 짐승을 나누는 선이라고 여겨집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이렇게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정신적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워요. 하지만 윌,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도 저와 같은 만족감을 느끼고 있나요?”

 

“박사에게 인간과 짐승을 나누는 그 경계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당신이 식인과 살인을 즐기는 이유는 당신이 대부분의 인간을 짐승보다 더 천하게 여기기 때문이죠. 전 그걸 당신이 캐시 보일을 그 들판에 전시했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요. 뱀이 자신의 먹이인 쥐를 바라보듯, 당신도 포식자의 눈으로 많은 사람을 바라보죠. 저 또한 포함해서 말이에요.”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렇겠지만 윌과 내 관계에서는 그 야만적인 본능과 이성적인 논리의 경계는 아주 중요한걸요. 저는 윌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해요.”

 

“그 ‘특별함’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죠. 베델리아 뒤 모리에도 당신에게 잠시나마 ‘특별한’ 존재였는 걸요.”

 

“분명 그녀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한 건 윌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그녀에게 굴과 마살라 와인을 계속해서 권했던 이유는 뭐였죠?”

 

팽팽한 긴장감이 윌과 한니발의 사이를 맴돌았다. 윌은 한니발을 선택한 이후 이미 알고 있던 자신의 고민의 해답들을 가장 이상적인 존재로 바꾸기 위해 가능성 사이에서 끊임 없이 헤맸다. 그들에게 안정감과 자신이 그리던 이상적인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지, 그와 조용하고 잔잔한 삶이 가능할지, 소박한 일상을 즐길 수 있을지, 윌을 옭아매는 한니발의 끔찍한 사랑에 순응하고 적어도 ‘보통’ 사람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지. 윌은 이미 알고 있는 답 사이에서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박사는 다른 이들의 목숨을 휘두르는 행위에 흥미를 느끼고 무례한 사람들을 당신만의 방법으로 그들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고결하게 만드는 것에 중독되어 있어요. 신의 권능에 대한 당신의 집착은 우리에게 결국 파멸을 안겨줄 겁니다.”

 

“윌은 이미 우리에게 파멸을 선물하려고 했던 전적이 있죠.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윌은 파멸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우리의 끔찍한 마지막과 연관을 짓고 있군요. 파멸이 두려워진 건가요, 윌?”

 

“저는 가끔 당신을 선택한 것이 죄악처럼 느껴져요. 내가 당신을 선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죽음은 계속될 거에요. 제가 당신을 죽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를 것이고, 저는 당신 옆에서 그걸 계속 목격해야겠죠. 저는 두려워요. 당신이 또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를까봐  매일 걱정하고, 내 선택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죽지 않을지 두려워서 당신이 저지른 모든 죄악들이 제 목에 손이라도 감은채로 제 숨을 죄어오는 것 같아요.”

 

“윌은 그날 제게 프랜시스를 직접 손으로 직접 죽인 뒤, 그 행위가 아름답다고 했죠. 그의 손도 당신의 목에 감겨져 있는 느낌이 드나요?”

 

그날 밤의 얘기는 둘의 사이에 처음 올라온 주제였다. 윌은 살인을 통해 또 다시 부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다는 죄악감에 일부러 한니발과의 대화에서 그날의 일을 일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 아름다움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윌은 매일 죄책감과 악몽에 시달렸다. 그날의 생각에 윌은 뺨의 아릿한 통증과 입을 맴도는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는 듯해 얼굴을 찡그렸다.

 

끈적한 피. 아드레날린.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윌은 그날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절대 잊지 못했다.

 

“당신의 손으로 우리의 죽음조차 선택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윌?”

 

“무력감. 허무함. 이런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인가요?”

 

한니발은 윌의 짜증 섞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약간 미소를 지은 채로 윌의 침대 옆에서 눈을 감고 잠든 강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길에서 버려진 유기견을 데리고 온건 ‘정상적인’ 삶을 향한 윌의 욕구와 충동적인 선택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니발과 도망치며 윌은 그들의 불안정하고 위험한 삶에 약한 생명체들을 자신의 삶에 끌어들이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쿠바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비를 맞고 벌벌 떠는 아이를 지나칠 정도로 윌은 모질지 못했다. 한니발과 상의 없이 충동적으로 아이를 데려왔을 때 윌은 익숙하게 강아지를 집 뒷마당에서 씻기고, 직접 밥을 만들어 챙겨주었다.

 

근처 가게에서 사온 바타르 몽라쉐가 들어 있는 종이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한니발은 밥을 먹고 있는 아이를 약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는 윌의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저버리지 않는 윌의 그 다정하고 선한 모습. 한니발이 윌을 필연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윌이 그와 한니발에게는 우정의 빛이 절대로 미치지 못할 거라고 했듯 윌과 한니발의 관계는 평행선에서 시작했다. 선과 악. 정반대의 선에 위치해 그들은 절대 교차할 수 없는 존재라 여겼다. 한니발은 이곳에서 윌을 바라보는 건 그들의 평행선의 기울기를 바꾸려 했던 그의 노력의 결실처럼 느껴졌다. 제 손으로 직접 자신과 동등한 ‘신’의 위치까지 윌, 한니발은 악의 옆에서도 선함을 저버리지 못하는 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한니발에 좀 당황하며 횡설수설 상황을 설명하던 윌의 오른쪽 뺨을 제 손으로 감싸고 엄지손가락으로 윌의 흉터를 쓸며 말했다.

 

“괜찮아요, 윌. 체격에 비해 조금 말라 보이네요. 근처 수의사에게 전화내일 예약을 잡아둘게요. 이름은 생각해 두었나요?”

 

한니발은 이 작은 생명체가 윌과 자신의 새로운 티컵이 되길 바랐다. 자신과 윌을 이어줄 존재. 에비게일. 티컵의 생각에 자연스럽게 에비게일이 생각났다. 한니발은 자신의 메모리 팰리스에서 만큼은 밝게 웃고 있는 윌과 자신의 딸을 생각했다. 이번에도 한니발은 윌이 사랑하는 존재를 아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윌을 사랑했기에 윌이 사랑하는 존재까지 아껴주고 싶었다. 한니발은 윌과 자신의 노력에 전의 볼품없던 그 모습과는 달리 살이 올라 건강해 보이는 아이를 바라보며 와인잔을 올려 향을 맡았다. 몸을 말고 편안하게 잠든 모습에 조금은 미소를 지어 보인 한니발이 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윌은 여전히 저를 죽이는 것에 대해 환상을 느끼나요?”

 

한니발은 비어버린 와인잔을 옆의 탁자에 가볍게 내려놓으며 물었다. 한니발의 질문에 윌은 약하게 헛웃음을 지었다. 베델리아에게서 저를 향한 한니발의 그 지독한 사랑의 존재를 확신을 얻은 날, 그리고 그 절벽에서 그와 마주 보고 서있을 때 느끼던 그 벅차오름. 윌은 확신했다. 그와 떨어져 있어도 행복해질 수 없고 그와 같이 있을때도 행복해질 수 없다면 그와 함께하는 운명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런 질문은 이제 좀 식상하지 않은가.

 

“전 제 목숨을 걸고서도 당신을 죽이는 것에 실패했는걸요.”

 

“실패했어도 그 시도를 멈출 거란 보장은 없죠.”

 

“If at first I don’t succeed, I should try, try again?”

 

“어디서 많이 들어본 조언 같군요.”

 

“박사님이 직접 마고 버저에게 해준 조언이었죠.”

 

“Do you believe that my death will bring justice to this world, Will?”

 

“제게 정의감이라는 존재는 당신을 선택하며 뒤틀린 지 오래예요.”

 

윌의 대답에 한니발의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손을 올려 윌의 왼쪽 뺨을 감싸자 윌은 눈을 감은 채로 그의 손에 뺨을 기댔다. 위스키 때문인지 한니발의 차가운 손에는 윌의 체온이 조금 뜨겁게 느껴졌다.

 

“윌, 당신은 언제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며 생각하는 걸 더 좋아했죠. 제가 윌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그 저주처럼 느껴지는 공감 장애 때문에 사람들을 곁에 두는 걸 어려워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만나면서 윌은 많이 변했어요. 당신에게는 제가 안겨준 가족이 있었고 당신이 선택하고 당신이 버렸던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들로 인해 가족에 대한 당신의 인식이 변했죠. 윌, 당신의 존재는 저에게 아주 특별하다는 것 하나만큼은 꼭 이해해 주었으면 해요. 제 옆의 동등한 자리에 직접 올라온 사람은 윌 당신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도 말했듯 우리는 가족인걸요.”

 

한니발은 윌의 얼굴의 흉터를 하나하나 제 엄지로 덧그리며 말했다. 윌은 한니발의 손길에 천천히 눈을 뜨며 한니발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벽안이 자신을 응시해오자, 윌과 함께 눈을 마주친 것 만으로도 한니발은 희열에 휩싸였다.

 

“당신은 예측할 수 없는 충동적인 행동을 곧잘 하기도 해요. 먼 미래에 당신이 내게 흥미를 잃게 되면 제가 베델리아 뒤 모리에의 신세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죠.”

 

“확신이 필요한 건가요, 윌? 제 메모리 팰리스 속에서 불러낼 수 없는 사람은 윌, 당신이 유일해요. 윌을 먹음으로써 당신을 제 몸 일부분에 남길 수는 있겠지만, 저는 당신과 마주 본 채 대화하는 만족감이 더 큰걸요. 저는 당신을 잃을 수 없어요, 윌.”

 

“확신은 이미 내가 당신을 끌어안고 절벽에서 떨어져 내릴 때부터 있었어요.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의 믿음과 진솔함이지 확신이 아니에요, 한니발.”

 

“우리의 ‘사랑’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건가요? 저는 윌의 대한 제 인식과 윌 당신이 내게 가진 인식이 일치하는 것만으로도 충족감을 느끼는걸요.”

 

“사랑은 신경 전달 물질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육체적 반응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해요. 저는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얄팍한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믿지 않아요. 모든 관계는 믿음과 진솔함을 기반으로 쌓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첫 시작은 거짓과 기만이 가득한 관계였어요. 당신은 사람의 옷을 입은 채로 저를 속였고 저는 당신을 체포하려 살인마의 옷을 입은 채로 거짓을 속삭였죠.”

 

“저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없는걸요. 진솔함이라, 윌 당신에게 하는 말 같이 느껴지는군요.”

 

“저는 그저 이곳에서의 우리의 첫시작을 진솔하게 다시 해보고 싶을 뿐이에요.”

 

윌은 제 손을 올려 한니발의 손목을 쓸었다. 걷어 올린 니트 소매 사이로 흉터가 눈에 띄었다. 윌 자신이 한니발에게 간접적으로 남긴 첫 상처였다. 윌은 시선을 한니발의 상처로 옮겨 엄지손가락으로 그 흉터를 살짝 쓸었다. 울퉁불퉁한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윌은 한니발의 손목을 제게로 가까이 당겨 그 흉터에 제 입술을 쓸었다. 얇은 피부에 상처가 닿자, 흉터의 느낌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윌은 그 흉터를 따라 제 입술을 쓸어내리며 시선을 올린 채로 한니발과 눈을 마주쳤다.

 

“어린 소나무를 분재로 만들려 가지를 계속 잘라내면, 그 나무는 가지가 잘려 나가는 것에 길들어 작은 화분에서 평생을 보낸다고 해요. 윌, 저는 당신을 화분에 가두고 싶지 않아요. 가위로 소나무 가지들을 잘라내듯 저는 당신이 깊게 베어 상처에서 피가 흐르면 그 상처를 외면하며 저를 피하는 대신 지금처럼 아프다고 진솔하게 표현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감정에 솔직해져도 좋아요, 윌. 더 이상 우리 둘을 방해할 것은 없어요. FBI, 당신의 가족, 알라나. 우리 둘의 사이에 끼어들 것은 없어요. 당신의 욕망에 솔직해져도 괜찮아요. 저도 당신에게 진솔함을 선물할 테니, 당신도 제게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제 형식적인 욕망은 당신이 누구보다 한니발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죠. 당신을 다시 그 병원에 밀어 넣는 것 말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당신의 자유를 더 이상 앗아 가고 싶지 않아요. 내가 당신은 택하는 한 당신은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르겠죠. 하지만 당신이 내 존재를 특별하게 느끼듯 저도 당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없을 거예요. 아무리 당신이 끔찍한 악행을 저질러도 제가 당신을 선택하지 않을 세계는 없을 겁니다, 한니발.”

 

윌은 그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와 한니발이 같은 세계에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윌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었다. 행복해질 수 없다면, 안정감을 찾을 수 없다면, 윌은 적어도  꼬여버린 자신과 한니발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풀어내길 원했다. 그 매듭들이 풀어낼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라고 해도 윌은 상관없었다. 한니발을 용서하고 이해했기에. 그를 필연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기에. 윌은 이미 자신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니발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서로가 하나가 되었던 그날 밤처럼 윌이 먼저 한니발을 끌어안았다. 한니발의 오른쪽 뺨에 남아있는 상처와 제 왼쪽 뺨의 상처를 맞댄 채로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윌은 속으로 그들의 공허와 상처를 서로가 메워줄 수 있길 바라며 제 동반자의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 2020 September Hannibal Collaboration Project Blood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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