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뇸 | @woo_nyom
접시 위에 심장의 형태로 모양을 낸 프로슈토 치즈가 화살 모양의 작은 스큐어에 끼워져 있었다. 먼저 도착한 손님들을 위해 준비해둔 전채요리에도 꽤나 정성이 담겨있었다.
물론 한니발의 식탁위에 정성 들이지 않은 음식이 올라 올 리 없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았고, 오랜시간동안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늘의 식사가 퇴근 후 편하게 초대된 가벼운 식사자리인 줄 알았던 사람은 나 뿐인것 같았다. 한니발이 미리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말했다면 거절했을 테니- 잠시 집에 들러 강아지들의 사료를 챙겨준 후 씻지도, 옷을 갈아 입지도 않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자리에 앉았더니 단정하고 깔끔한 복장의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화려하게 튀는 기분이었다.
"포유류의 심장은 평생 살아가며 20억 회 정도 뛴다고 합니다. 쥐의 심장은 1분에 400회 정도 박동하기 때문에, 3년 정도로 수명이 짧지만 평생 살아가며 뛰는 박동수는 인간과 비슷하죠."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비어있는 자리 위에 검붉은 색의 카드가 놓여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The heart of lovers'라는 문구와 내 이름이 흰색으로 정갈하게 인쇄되어있었는데, 아마도 자리 배치가 정해져있어 카드로 이름을 표시 해 둔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있는 열한명의 사람들 중 나를 제외하곤 전부 연인과 함께한 자리인 듯 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공들여 준비된 자리였다.
"때문에 평소에 심장이 천천히 박동할 수 있도록 운동으로 관리하는 것이 심장을 오래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연구자들도 많아요."
한니발은 식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비워진 손님들의 와인잔을 채우고, 비워진 전채요리 접시를 트레이로 옮겼다. 이제 겨우 식사의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의 말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그가 내 접시를 옮기며 "미리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하며 속삭이듯 귓가에 말하는 걸 듣고나서야 그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물론 심장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잡아먹힐 운명이라면, 이 자리의 연인들처럼 가슴 뛰는 사랑을 하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죠."
한니발의 농담에 내가 떠올린 생각은 '이 식탁을 위해 몇 명이나 죽인거지?'였다. 아니, 먼저 '이게 다 사람 심장인건가?'를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을 오래 잡고 있기엔 너무 당연한 질문이었다. 한동안 체서피크 리퍼의 새로운 희생자는커녕 눈에 띄는 살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최근엔 그가 나를 초대할때면 생선이나 작은 새 요리를 대접해왔었다. 나를 분석하는 것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겉면에 밀가루를 입혀 바삭하게 구워낸 통구이나, 얇게 저며 야채들과 함께 팬에 살짝 익힌 소테, 큰 덩이로 잘라낸뒤, 꼬치에 꽂아 레드와인 소스를 곁들여 구워낸 꼬치구이까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던 음식들이 갈빗대가 열어젖혀진 채 심장만이 도려내진 시체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올라오는 느낌에 급하게 물을 마셨다.
"오늘 식탁에 오른 동물들은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사랑을 즐겼기를 바라야겠군요."
식사의 모든 준비가 끝났는지 한니발이 조금 타이트한 듯 보였던 정장 베스트의 단추를 풀어내며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약속 시간에 도착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에서야 그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드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생후 3개월 된 새끼 돼지의 심장을 사용했습니다. 연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성인의 심장 무게와 가장 비슷한 개월 수기 때문에 사랑을 담기에 더할나위없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5개의 신선한 심장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농장을 다녀왔는지.. 4개로도 충분했지만 여유분을 준비해뒀으니, 편하게 드세요."
5명이요, 겨우 12명의 저녁식사를 위해서?
한니발이 접시 위의 작은 집게를 집어 들며 식사의 시작을 알리자 당연하게도 모두가 포크와 나이프를 바쁘게 움직였다.
나이프가 접시에 닿으며 내는 날카로운 소리나, 썰어낸 고깃덩이에서 흘러 나오는 핏물 따위는 그 누구도 신경 쓰이지 않는 듯했다. 사람들이 고기를 썰어 입에 넣고 씹어 삼키는걸 보고있자니 내 입에서 살캉이며 뭉개지는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지는것 같았다.
어떻게 자리를 버티고 앉아있어야 할 지 몰라 가장 앞에 놓여있는 샐러드를 접시에 덜어 조금씩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맛 같은건 느낄 여유도 없었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한니발이 원하는 걸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윌, 안색이 좋지 않아요. 괜찮나요?"
한니발은 '초대 된 손님이 식사를 즐기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 식탁 주인의 표정'으로 말했다. 웃음이 나오려는걸 참아야 했다.
"심장 요리는 렉터 박사님의 요리가 아니면 접하기 어려워서요. 오랜만에 먹으려니 적응이 안되네요. 처음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랬군요. 심장 요리는 자주 선보였기 때문에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네요. 꼬치구이는 심장의 형태나 향을 소스로 감췄으니 좋은 시작이 될 거예요."
한니발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켜 내 접시 위에 꼬치구이의 큰 덩이를 한조각 덜어주었다. 흰 접시 위에 점성이 있는 붉은 소스가 고기를 중심으로 천천히 퍼지다 미처 다 먹지 못한 샐러드까지 흘러 양배추를 붉게 물들였다.
핏빛의 붉은색 소스가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렉터 박사님.
"통구이는 저도 오늘 처음 봐서 놀랐어요, 렉터 박사님의 요리는 처음 접하면 손대기 어렵긴 하죠. 한 입만 먹어보면 그 모양이 어땠는지는 생각도 안 나는데 말이에요."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한니발은 겉치레로 부정하지 않았다.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와인을 한 모금 마실 뿐 이었다. 그녀는 한니발의 칭찬을 시작으로 하나 둘 내게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감자 퓨레를 올려 먹으라느니, 눈을 감고 한입만 먹어보라느니.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대화의 흐름이 끊겨 언짢아 보였다.
그녀를 더 상대했다가는 시선이 끌릴것만 같아 고민끝에 접시 위의 고기를 작은 조각으로 썰어냈다. 한니발은 내 포크 끝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맞췄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구역질을 해버려도 나는 몰라요 한니발, 당신이 원 한 거예요.
"향이 정말 좋죠? 과일이 여러가지 들어간 것 같아요. 가끔은 레시피를 받아내고 싶어져요, 박사님처럼 신선한 재료를 찾아내는것 부터가 어려워 이런 맛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요!"
한니발이 이 식사를 설계했을 때 초대되는 이들의 성격까지 계산했던 걸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의 계획인지 알 수 없어 더 괴로웠다.
"맛있네요, 렉터 박사님. 이 모든걸 혼자 준비하셨다니 오늘 하루가 정말 바쁘셨겠어요."
"그래도 오늘 스케줄을 비울 정도는 아니었어요. 테이블은 어제 저녁 제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로 준비해뒀고, 소스도 3일전에 미리 만들어서 숙성시켜뒀어요. 여유가 없는 주방에선 실수가 생기기 때문에 이런 자리는 미리 준비해 두는게 많은 편이에요."
그의 말에 대답않고 입꼬리만 올려 웃가가 다시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다음번엔 어떤 요리를 할 지 미리 말 해 드여야 겠어요, 만들고 남은 라구소스로 파스타를 해드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이 말을 하는 한니발은 꽤나 즐거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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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당신이 이런 자리를 갖는 건 묵인해 줄 수 있어요."
모두가 돌아가고, 둘만 남은 주방에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식기를 씻기 위해 크게 틀어둔 물소리는 한니발과 날붙이가 가득한 주방에서 단둘뿐이라는 걱정을 덜어주는 것 같았다.
"당신의 행동에 흥미가 있는 건 맞지만, 나를 당신의 세계로 끌어들이진 말아요."
"... 당신이 그렉의 심장을 먹었으면 했어요. 꼬치구이에 쓰인 고기가 그렉이었는데, 대화를 나눠 본 사람 중 가장 사랑이 넘치는 심장을 가졌었죠. 그의 사랑이 아내에게만 향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요."
한니발은 내 말을 듣고도 일부러 무시하며 사람들이 가득 차 있을 땐 하지 못했던 오프닝 멘트를 꺼냈다. 그 회피는 내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테이블 위를 장식해둔 꽃을 화병에서 한 다발 꺼내 줄기부터 잘라 쓰레기통에 담았다. 크게 울리던 물소리도 '싹둑-' 하며 거칠게 잘리는 가위소리를 감추진 못했다. 그는 달각거리는 소리가 멈춘 걸 눈치챈 건지 뒤를 한 번 돌아보더니 잠시 내 반응을 살피더니 그대로 틀어둔 물줄기에 손을 씻어내고는 수전의 손잡이를 반대로 돌렸다.
"당신은 저와 같아요. 윌, 제 입맛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언젠가-"
"나는 당신과 달라요. 한니발."
그의 입술이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듯 삐죽 움직였다.
자칫하면 입 밖으로 터져나올 '당신은 영원히 그 누구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할거예요' 하는 말을 삼키려 애쓰느라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소리 같은 작은 소리에 필사적으로 집중해야만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머릿속으로 호의를 무례함으로 대응하는 손님을, 생각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죽여버리는 상상을 하고 있을지, 망가져가는 모르모트의 상태를 고려해 실험의 방향을 다시 고민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오랜 침묵의 시간동안 내가 한니발의 표정을 분석하려 노력하고 있을 때, 한니발은 순조롭게 내게서 두려움을 읽어낸 듯 했다.
"긴장했군요 윌."
한니발은 손을 들어 올려 내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터라 그가 손을 올리던 순간 숨을 깊게 들이마신 채 호흡을 멈췄다가 조금 지나서 뺨에 부드럽게 퍼지는 온기에 긴장이 풀려 겨우 숨을 뱉어냈다.
"당신의 심장소리가 지금 제 귀에 들리는 것 같아요. 아주 빠르고, .. 강한 박동이에요."
한니발의 손이 천천히 내려와 조심스럽게 내 목을 감쌌다. 내가 어깨를 떨며 놀라자 손을 잠시 떼고 익숙해질 수 있도록 손가락 끝부터 다시 천천히 그러쥐었다. 아마도 직접 맥박을 느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의 눈이 나를 바로 보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도 안심이 됐다.
"나를 믿나요?"
목을 감싸 쥔 손에 힘을 살짝 주며 다른 손으로는 내 뒷머리를 감싼다. 허락이라도 받으려는 것처럼 시선을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내 작은 몸짓이나 호흡에 집중하며 내 반응을 살폈지만, 대답을 바라는 눈빛은 아니었다.
"참을 수 없이 괴롭다면 제 어깨를 잡아요, 여기를, 이렇게요. 반드시 기억해야 해요."
한니발은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렸다. 그가 어떤걸 할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의 공포는 극적인 흥분과 같아요. 심장을 요동치게 하며, 피부를 붉게 물들이고, 호흡을 거칠게 만들죠"
한니발이 천천히 팔에 힘을 싣고 강하게 압박하자 기도가 완전히 막혀 조금의 숨도 삼키거나 뱉어낼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그는 여전히 내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를 관찰하는듯 보였다. 혹시나 내가 어깨를 잡는 사인을 잊었을까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쓸어 내가 잘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까지하며 섬세하게 내 상태를 살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다시 나를 몰아붙이며 물었다.
"말해줘요 윌,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공포인가요, 흥분인가요? 당신은 그것을 구분할 수 있나요?"
한니발의 팔에 내 손톱이 깊게 파고들어 피가 맺히는 게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내 숨을 쥐어짜내듯 미동도 없이 그저 조용히 내 표정을 읽었다. 그의 귓가에 들린다던 심장 소리는 이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핏기가 가시고 차가워진 손이 그의 팔에서 힘없이 떨어지자 손톱자국이 깊게 팬 상처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며 그의 소매를 물들였다. 한니발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눈을 떠보려고 해도 제대로 뜰 수 없었고 애초에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머릿속에 쿵쿵 빠르게 울리던 심장 소리는 조금씩 느려져갔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언젠가는 제가 당신을 먹어치울 생각이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